찬양 : 우리 주님 모신 가정(찬 555장)
말씀 : 창 42:1-7
설교 : 우리 넘어 계시는 주님을 바라고, 그분의 사죄의 은혜를 구하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 특별히 자연 재난 같은 일들이 일어나면 큰 두려움과 공포를 갖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주권자로 믿고 있는 신앙인들에게는 더 큰 혼란이 생깁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겠다는 분이 죽음을 부르는 일을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 그 일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손 놓고 보고만 계시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정말 세상의 통치자가 맞나,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키시는 분이 맞나 하는 의심도 가져보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은 성경을 통해 그렇지 않다고 알려주십니다. 절대 방관하거나 능력이 없는 분이 아님을 알려주십니다.
가나안 땅과 그곳에 살던 야곱과 그 아들들에게 내려진 기근은 그곳과 그들을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기근을 통해 오히려 모두를 살리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단지 먹을 것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씻을 수 없는 죄를 해결해주실 계획을 실행하셨습니다. 물론 그들은 기근에 눈이 가려 전혀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눈앞에 닥친 온갖 재난들이 우리 눈과 마음을 막을지라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우리 앞서 길을 내시는 주께서 반전의 역사를 예비하고 계심을 믿고 선하신 그분의 손길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재미난 장면이 하나 등장합니다.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후 요셉과 그를 죽인 형들이 다시 조우하게 된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대조적인 모습이 있는데, 요셉은 형들을 보고 알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보고 바로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물론 서로 다른 환경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큰 신분의 차이 때문에 총리였던 요셉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우리가 죄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형들은 동생을 죽인 죄를 아주 깊이 감추었습니다. 심지어 동생의 얼굴과 목소리마저 잊을 정도로 거리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그들이 범한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죄를 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저지른 크고 작은 죄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가능한 한 보이지 않게 감추고 거리를 멀리 두려고 애씁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아무도 모를 때가 되면 마치 공소시효가 지난 것처럼 스스로 죄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하지만 죄는 그렇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요셉은 알아봅니다! 똑똑히 기억하여 밝혀낼 수 있습니다. 피해자만 기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걸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범한 죄를 숨기고 멀리 떼어낸다고 죄가 해결되거나 사해진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당사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사죄의 은혜를 누려야만 그제야 해결되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죄를 숨기거나 멀리하지 말고 대면하고 용서받을 노력을 다하여 주님이 주시는 사죄의 은혜 아래서 자유케 되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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