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마가복음 6:1-6
설교 : “편협한 세상에 믿음으로 서라”
최근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들과 이슈들을 보면서 요즘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공평과 정의”입니다. 그런데 과연 창세기6:5절에 이른바 “사람이 죄악으로 가득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한 사람이” 공평과 정의를 진정으로 논하고 행할 수 있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말로는 이 사회와 사람들을 위해 공평과 정의를 구하고 행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처럼 행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모두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편견 가미된 말을 듣고 이러한 것들이 더해져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말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편견이란 무슨 말입니까? 편견을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 하고, 라틴어로 ‘프라이유디키움(praejudicium)’이라 하며 “이른 판단”이라는 뜻하는 것입니다. 즉 편견이란 무엇을 알기도 전에 사람이나 사물을 미리 판단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편견이 무의식중에 쌓이고 이렇게 쌓인 것이 더해져 말하고 결정하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니, 참으로 신명기32:4절 말씀처럼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하신 것처럼 참된 공평과 정의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 놀라운 공평과 정의 그리고 사랑을 통해 우리 죄많은 인생들을 구원얻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은 공평과 정의를 행한다고 하나 사실상 무지한 편견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을 배척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대인들이요 그것도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시고, 회개를 전하시며 치유의 이적을 행하시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후 예수님의 고향으로 가신 이야기입니다. 고향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 들어가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시니 여기서도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놀랍니다. 하지만 여느 다른 곳과 달리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반응이 다릅니다. 그동안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가르치실 때 많은 이들이 주님의 말씀에 놀라고 주님을 따랐지만 고향땅에서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의심과 의혹을 갖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가르침이 내게 주어지고 있는데, 주님의 가르침을 일도 모르는 이들이 2절 말씀에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성경적 평가는 나사렛 사람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채 불신앙의 반응으로 예수님을 배척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의 배척의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인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 목수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 예수로 여긴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마리아의 아들로서만 본 것입니다. 그랬던 예수가 회당에서 권위 있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으니 말도 안되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이 모습을 병행본문인 누가복음 4:28-29절에서는 회당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던 사람들이 화를 내며 예수님을 쫓아내고 밀치며 떨어뜨리고자 하였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나마 했던 것이 자신들이 보는데서 자라온 소년 예수가 어떻게 초자연적인 권능을 전하는 이가 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을 품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나사렛 사람의 모습은 우리 구주되신 예수님을 향하여 믿음의 눈이 없이 세상적인 편견으로 보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자신들이 보았던 것만으로 미리 판단해버리고, 믿음없는 불신앙으로 대한 것입니다.
그 결과 본문 5-6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이는 예수님께서 나사렛 사람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더 이상 이적을 베풀지 않으셨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학자들은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수용하지 않았기에 더 이상 이적을 행치 않으신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복음이 받아들여지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곳에 이적을 베푸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이적을 행하실 수 있으나 나사렛 사람들의 믿음없는 불신앙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구원과 능력을 얻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며 믿음으로 나아가야할 때, 믿지 못했기에 구원의 큰 은혜 가운데 나아가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사렛 사람들의 불신앙의 모습들, 마땅히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지 못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무지한채 있는 그들을 보며 다시금 마음에 깨닫게 되는 것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헤쳐나가고 고난과 역경, 어려움들을 통과하는데 있어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무지로 편협한 세상이 아니라 오직 나를 건지실 이, 나를 구원하시는 이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서는 것입니다.
내가 이를 수 없고 다다를 수 없는 하나님이 공의와 사랑을 덮입혀 주신 주님을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주님 보시기에 부족하고 연약한 믿음이지만, 언제나 믿음으로 서고 믿음으로 행하여 우리를 향한 주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맛보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내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세상의 물결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목도하며 주님께 영광돌리시는 우리 열린비전 성도님들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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