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도서 독서모임

도서소개:죽음에 관하여
2025-10-22 11:12:58
김근택
조회수   23

저자:팀 켈러

저자는 [뉴스위크]에서 21세기 C.S루이스라는 찬사를 받은 사역자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리디머교회 담임목사로,

방황하고 회의하는 이 시대 수 많은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1989년에 시작한 리디머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약 팔천여 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팀 켈러의 인생 베이직 시리즈 3권 중 하나이다. (1.태어남에 관하여 2.결혼에 관하여 3.죽음에 관하여) 삶의 중대한 변화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변화된 삶이 무엇이지 생각하도록 돕고 싶어 이 소 책자 시리즈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 중에 죽음에 관하여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도 지난 8월28일 97세로 천국에 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면서 죽음에 관하여 생각하던 중 이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건강하게 생활하시다가 갑자가 8월27일 병원 응급실에 입원하시여 치료를 받으시던 중 소천하신 어머님, 아니 소천 당일 아침 6시35분에 전화하시여 양치질을 할 수 있도록 치약 치솔을 가져오라는 통화를 했는데 오전 8시15분 천국에 가셨다.

너무나 황망했다. 어머님은 100세는 충분히 사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어머님의 죽음에 대하여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1.언젠가 맞이할 나의 죽음, 준비하고 있는가.

죽음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 우리의 철천지원수다. 평생 우리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다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목숨을 앗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선조들에 비해 죽음의 준비되어 있는 정도가 훨씬 뒤처져 보인다. 이유가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현대 의술의 위대한 축복이 죽음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끔 가려 놓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죽음을 가까이서 보았다.기대 수명이 짧아서 어려서 부모를 여윈 사람들이 많아, 거의 누구나 자라면서 시신을 보았고, 젊거나 나이든 친척의 임종을 맞이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의학과 과학 덕에 조기에 사망하는 많은 원인들을 해결했고, 절대 다수의 사람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병원과 호스피스센터에서 쇠약해져 가다가 사망한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도록 단 한 사람의 죽음도 지켜보지 못하는 일이 많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닥쳐올 죽음임을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 속으로는 그 사실을 억누르며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죽음이야말로 반드시 닥쳐올 현실이건만, 현대인은 죽음에 대한 아무런 계획없이 마치 죽지 않을 사람처럼 살아간다.

두 번째 이유는 세속화 시대가 현세의 의미와 만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즉 현세의 행복에만 집중하는 세속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에 필연인 죽음을 준비하는데 사상 최악이다. 우리는 불가피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피하고 부정한다.

현대 세속 문화가 죽음 앞에 속수무책인 세 번째 이유는 죽음의 존재를 부정하다가 깊은 무의미감에 빠졌기 때문이다. 존재의 소멸을 생각할 때 엄습해 오는 무의미감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종의 두려움이다. 

 

영원을 믿는다면 죽음은 "궁극의 승격"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더는 그렇게 믿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현대 서구인의 심리 구조를 지배하다시피 한다"고 <어니스트 베커, 죽음의 부정>에서 말한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이 막강한 적에 맞설 자원을 주었다.

 

우리가 죽음을 힘들어하는 네 번째 이유는 현대 문화에 죄와 죄책과 용서라는 범주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 안에 "부채"의식이나 죄책감 그리고 그런 개념 자체가 출현한 것은 초월적 신들을 우리가 복종해야 할 대상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종교가 쇠퇴해 심판의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죄의식도 차차 약해질 것이라며 그는 쾌재를 불렀다.

 

저자는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 게 아니라 죽음을 영적 후자극제(의식을 잃은 사람을 냄새로 깨어나게 하는 약)로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죽음은 우리를 흔들어 깨워 이 생이 영원하리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식에 가거든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그분은 그분의 사랑을 제외하고는 이생의 모든 것이 덧없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사실이다.

 

챔피언이란 대리전을 치르는 사람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은 각자 자기의 군대 대표로하여 각 군대 챔피언으로 싸웠다. 챔피언이 이기면 전군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전투에 승리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2:14절에 그분이 죽음의 세력을 멸하셨다고 했다.

모든 종교가 죽음과 내세를 말하지만 대체로 주장하는 바는 영원에 대비하려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최선을 다해 착하게 살지 못했음을 알고 마땅히 살아야 하는 대로 살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우리가 죽기를 무서워하여 끝까지 삶에 매달려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르다.

기독교는 죽음을 이기신 챔피언이 계시다.

그분이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고 덮어 주신다.

예수님이 죽음의 세력을 이기셨다. 그 분을 의지하고 믿으면 우리는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된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바울의 말대로 "사망이 쏘는 것"은 우리의 양심이다. 즉 도덕법 앞에서 우리가 의식하는 죄와 심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제하셨다. 더 정확히 말해서 그분은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그것을 대신 짊어지셨다.

신자는 죽든 살든 결과와 무관하게 늘 죽음을 이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기에 이제 죽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를 지금까지보다도 더 행복하고 더 사랑받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뿐이다.

 

2.사랑하는 이의 죽음,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당할 것인가

 

바울은 그리스도인도 가슴 깊히 충분히 슬퍼할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동시에 소망이 공존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1)슬픔을 애써 억누르지 말라

우리는 그저 참고 이겨 내려 애쓰지 말고 슬퍼해야 한다. 그러나 슬퍼하는 것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슬픔은 독소로 변할 수 있다. 소망을 가미하지 않으면 슬픔 때문에 마음이 독해지고 삶이 어두워지고 짓눌릴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울라고 할 뿐 아니라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한다. 우리 앞에 울일이 많다는 것이다.

"즐거워한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

(2)슬퍼하되 소망을 품고

슬퍼하는 게 분명 옳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우리의 슬픔에는 또한 소망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라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라"(롬6:5-9)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셨기에 우리도 장차 그분의 부활에 동참한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당신에게 이 소망이 없다면 죽음을 대할 때 어찌할지 막막할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점점 곪아서 당신을 절망에 빠뜨릴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는 슬픔에 소망을 더할 수도 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은 소금을 쳐서 육류를 보존한다. 소금에 절이면 고기가 썩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슬픔도 소망이라는 소금을 치지 않으면 고기처럼 상한다. 그러나 슬픔을 소망에 절이면 지혜와 긍휼과 겸손과 애정이 싹튼다.

 

(3)그리스도인이 품는 소망의 위력

그리스도인이 죽음 앞에서 누리는 이 독보적인 소망의 특성이 무엇인가?

이 소망은 인격적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사람의 미래는 무한한 사랑의 세계다.

살전4:16-18절을 읽어보라

"함께"라는 말이 반복된다. 장차 당신은 사별했던 이들과 함께 있을 것이고, 주님과도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다. 이런 표현은 인격적 관계를 의미한다. 즉 완전한 사랑의 관계들이 영원히 지속된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사랑의 관계가 지속되는 인격적 미래를 내다본다.

 

(4)기뻐 웃으며 노래할 수 있다.

죽음을 마주하는 반응은 다양하지만, 우리가 범할 수 있는 두 가지 상반된 오류가 있다. 하나는 너무 절망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땅히 배워야 할 바를 배우지 않고 그냥 무시하는 것이다.

어느 쪽도 유익하지 못하므로 우리는 성경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슬퍼하되 소망을 품어야 한다. 

부정하지 말고 깨어나 영원한 평안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웃고 노래해야 한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오실 그 날에는 산과 숲도 기뻐 노래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유의 날개를 타고 재림하실 때 성경 말씀대로 산과 나무가 기뻐 노래한다. 그분의 손안에서 마침내 우리가 하나님이 뜻하신 본연의 모습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산과 나무들이 진정 기뻐 노래할 진대 하물며 우리는 오죽하겠는가?

 

'죽음은 한때 사형집행인이었으나 복음 앞에서 한낱 정원사로 전락했다'(17세기 기독교 시인 조지 허버트)

슬퍼하되 소망을 품으라. 부정이나 착각에서 안심하고 깨어나라. 죽음 앞에 웃으며 장차 일어날 일을 생각하며 기뻐 노래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손을 잡고 계시면 당신도 노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다.

기독교 신앙은 죽음 앞에서 신자에게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약속과 소망을 준다. 하나님을 언제라도 대면하여 만날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이 기회에 기도와 준비를 병행해야 한다.

 

죽음 앞에서 아직 하나님의 위로와 확실한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이렇게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믿어서 받는 구원과 내 힘으로 얻어 내는 구원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는가? 혹시 나 스스로 구원을 얻어 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조금이라도 고수하고 있지는 않은가?"

 

죽음을 마주한 신자가 묵상할 약속의 성경 말씀을 요일별로 하나씩 일곱 편을 소개한다.

 

월요일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빌1:20-23)

 

성경 말씀대로 죽음이란 참혹한 괴물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신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삶도 죽음도 유익하다.

 

화요일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이사야43:1-3)

 

하나님이 명백히 말씀하시듯이 우리가 그분의 것일진대 그분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수요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이라"(고린도후서 4:16-18)

 

노년에 이르면 우리의 체력과 외모는 쇠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자라 가고 있다면 영혼은 날로 더 강건하고 아름다워진다. 죽음에 이르러 이 엄청난 전복은 완성된다.

 

목요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담대하여 윈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린도후서 5:1, 4, 8-9)

 

신자는 죽으나 사나 예수님과 함께 하십니다.

 

금요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14:1-3, 27)

 

세상이 주는 평안은 '아마 그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을 거야'가 고작이지만 예수님의 평안은 다르다.

 

토요일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면 우리는 모든 불의에서 끗하게 하실 것이요 .........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다."(요한1서 1:8-2:1)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보시므로 죄가 우리를 정죄핳 수 없다는 말씀이다.

 

일요일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18, 31-35, 37-39)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이가 관 앞에 서거나 본인에게 닥쳐올 죽음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면 가장 큰 도전은 다음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사랑과 기쁨과 은혜가 이제는 다 사라진 것 같아도, 그 모든 것의 원천이신 주님께로부터 여전히 직접 받아 누릴 수 있다. 그분과 교제하면 여태 당신이 손조차 대 보지 못했던 능력의 깊은 샘이 열린다.'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움으로 보지 않고 주님 품으로 돌아가는 여정으로 보면서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고 싶은 성도들에게 꼭 읽어보시길 권면합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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